성지순례, 성경 속 요르단, 요르단 속 성경 이야기(1편)

Author
이재묵
Date
2017-02-07 12:40
Views
1903


아래의 목록은 요르단과 성경, 성경과 요르단을 연결하는 질문들입니다.

현재 요르단 방문자는 물론이고 과거 방문하셨거나, 앞으로 방문하실 분들 그리고 방문하지 못하셨던 분들 모두 함께 풀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각 질문에 대하여 ‘예’ 또는 ‘아니오’ 를 스스로 생각하고, ‘예’ 또는 ‘아니오’ 라고 답한 그 이유를 스스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1. 헤롯 대왕은 페트라를 수도로 하던 나바트 왕국의 왕족이었고, 그의 아들 분봉왕 헤롯(헤롯 안티파스)는 나바트 왕의 딸(공주)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2.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아라비아 페트라)로 불리던 페트라로 향했습니다.

3. 페트라는 출애굽 당시의 에돔왕국의 수도였습니다.

4. 모압은 목축하기에 좋은 땅, 푸르른 초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5. 모압 평지 - 엘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승천했음에도 제자들은 돌풍에 휩쓸려 사라진 것으로 보고 그의 시신을 찾아다녔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옛날에 광야에서 돌풍이 자주 발생하여 인명 피해가 있었던 때문입니다.

6. 모압 평지 - 출애굽 당시 모압 평지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 골짜기에 머문 것은 여리고 적군을 두려워한 까닭이었습니다.

7. 모압 평지 - 세례 요한의 활동 무대는 이스라엘 여리고 주변의 유대 광야가 아니라 모압평지였습니다.

8. 모압 평지 - 세례 요한이 먹은 메뚜기는 쥐엄나무입니다. 그 쥐엄나무는 오늘날 암만 시내 곳곳에 가로수로 심겨져 있습니다.

9. 모압 평지 - 세례 요한이 입은 낙타 가죽옷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금기시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낙타 고기를 먹었습니다.

10. 모압 평지 - 예수님은 요르단쪽에서 세례 받으시고, 요단강 건너 (오늘날 이스라엘의) 유대 광야에서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했습니다.

11. 요단강은 매년 봄 철 이후에 3개월 안팎 범람하곤 했습니다. 겨울철의 강설량과 강우량에 따라 범람 수위는 달랐지만 상습적인 침수와 범람이 이어 졌습니다.

12. 요단강은 황천(黃泉)입니다. 그 흙탕물 요단강에 피부질환이나 문둥병 걸린 사람이 몸을 담그면 몸이 깨끗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13. 세례 요한에 의해 요단강 지역에서 회개의 세례 운동이 전개된 시기는 봄철이 아닙니다.

14. 사해 - 갈릴리는 받은 것을 나눠주기에 살아있고, 사해는 받기만 하기에 죽은 바다입니다? => 아닙니다. 달리 본다면 갈릴리 호수는 상부 요단강 물을 받아서 하부 요단강으로 흘리는 정도지만, 사해는 자신을 증발시켜 각종 미네랄과 소금,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희생의 샘플일수 있습니다.

15. 사해 - 끊임없이 거저 받은 것의 일부를 나눠주는 갈릴리의 삶과 가진 것을 온 몸을 증발시켜 생명을 제공하는 사해의 헌신 중 사해가 더 헌신적입니다.

16. 사해 - 맛을 잃은 소금도 제 몫을 다했습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불순물이 많은 순도가 낮은 소금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대리석 바닥 같은 겨울철 눈이 내리고 빙판이 생길 때 눈을 녹이고 미끄러움을 줄이는데도 불순물이 많은 소금 즉 맛을 잃어버린 소금을 사용했습니다.

17. 사해 - 사해는 교통로로 사용되거나 유람선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사해 횡단을 가장 빨리 요단강 서편과 동편을 오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헤롯왕의 경우 요단강 서편과 동편을 배를 이용하여 왕래했고, 요단강 좌우편에 4~5개 정도의 선착장이 발굴되었습니다.

18. 사해 평지의 5개 도시, 소돔 고모라 스보임 모두가 요단강 동편에 자리했습니다. 소돔 고모라 멸망사건 당시 다른 3개 도시국가들도 다 망했습니다.

19. 최초의 중동전 장소는 사해 동편 지역입니다.

20. 소알 성의 뜻은 ‘작은 성’이라는 뜻도 있었지만, 설탕이 재배되는 ‘설탕 도시’라는 의미도 지녔습니다.

21. 암몬 지방은 산지를 중심으로 이뤄져있습니다.

22. 기드온과 300용사는 요르단 암만 지역에까지 들어왔습니다.

23. 데가볼리와 분봉왕 헤롯이 다스리던 요단 동편은 베레아입니다.

24. 데가볼리 도시들 중 다수가 요르단에 있는데 가다라, 거라사, 펠라, 암만(필라델피아) 등이 있습니다..

25. 헤롯은 물 좋은 곳만 찾아 다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은 온천수도 포함됩니다.!

26. 헤롯과 예수님의 길은 달랐습니다.

27. "양은 선하고 염소는 악하다. 양 같은 신자가 되라." 이 말은 틀린 말입니다.

28. 양은 붙어 다니기를 좋아하고 염소는 독립적으로 움직이기를 좋아합니다. 섞어 키우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29. ‘양털같이 희리라’는 이사야의 표현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스위스 양 같은 양털을 가진 양은 중동에 없기 때문입니다.

30.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31. 목자는 모든 양들을 일일이 상대하지 않고 그중 지도자 양들을 통제하여 다른 일반 양들을 이끕니다.

32.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입니다.

33. 들에서 양을 치는 시기는 겨울철이 아닙니다.

34. 예수님은 최소한 공생애 기간 중 10개월 정도를 요르단 지역을 오가셨습니다.

35. 예수님은 세례를 통해 인간으로서 가장 낮아질 수 있다는 그 한계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요단강 하류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사해와 수면이 거의 일치합니다.

36. 브올의 아들 발람 선지자의 고향은 요르단의 얍복 강변의 한 마을이었습니다.

37. 엘리야의 고향은 요르단 북부 길르앗 지방의 중심부에 위치한 디셉(리스팁)입니다.

38. 거라사인의 땅과 가다라 지경은 같은 장소를 말합니다.

39.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당시의 나이는 최소한 97세가 넘었습니다.

40. 출애굽 막바지에 다다른, 여호수아 지도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이 마르기까지 2-3달 정도 기다리면 될 일 이었습니다.

41.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르단 지역에서 한 평의 땅도 분배하지 않았고, 모두 요단강 서편 가나안 지역에서 분배 받았습니다.

42. 모세는 느보산 이상의 요르단 지역을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43. 왕의 대로는 말 그대로 왕만 다니던 고속도로였습니다.

44. 산위에 있는 동네는 숨겨질 방법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집이나 마을은 산위에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45. 반석 위에 세운 집에서 말하는 반석은 석회암입니다.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의 산지는 석회암 산지가 많습니다.

46. 페트라는 예수님때 가장 유명했던 난공불락의 요새도시였습니다.

47. 베드로에게 주님은 페트라같은 견고한 믿음과 새로운 신앙공동체(교회가 페트라같이 듬직한 피난처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48. 공중의 새는 독수리가 아니라 까마귀를 말합니다.

49. 다윗은 우리야를 죽임에 너무도 치밀했습니다. 다윗 당시의 교통수단은 도보 여행, 나귀, 말, 낙타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령은 말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우리야를 죽이기 위하여 다윗은 자신의 친서를 원정군 사령관 요압에게 보내는 전령의 역할을 맡기고 말을 태워 보냈기 때문입니다.

50. 그런데 말은 군사용, 낙타는 장거리 여행용 경비행기급, 나귀는 자가용급에 해당했습니다.

 

<본 글은 현재 중동(아랍) 전문가로 활동하고 계시는 김동문 목사(선교사)님께서 제공해 주신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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