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발자취-에그나티아 가도(Via Egnatia)를 따라서

Author
김관옥 권사
Date
2023-11-22 22:55
Views
234
영광교회(구 체부동 교회) 2023. 10. 23.(월)~2023. 11. 01.(수)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 순례길이었던가?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가슴 뛰게 한다. 그런데 그냥 여행도 아니고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지순례라니,
나의 심장 박동이 그에게 가서 닿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순례팀 21명은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의 여정을 그리스에서 시작하는 거꾸로 순례였다.



우리를 태운 사우디 항공은 인천공항을 떠나 제다를 경유, 그리스 아테네로 날아 갔다. 순식간에 우리는 시간 여행자가 되었다.
앞으로 우리의 순례길은

그리스 아테네-고린도-메테오라-뵈뢰아-데살로니키-암비볼리-아볼리니아-네압볼리-까발라-빌립보-터키 국경 통과-마니사-에베소-사데-빌라델비아-골로새-파묵갈레-라오디게아-비시디아 안디옥-콘야 이고니온-갑바도기아 데린구유, 괴뢰메 동굴-이스탄불 성 소피아 성당

신들의 도시 아테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파르테논 신전, 아레오바고, 필로파포스 언덕... 아레오바고는 아덴의 유명한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는 높이 115m의 석회암 언덕으로 사도 바울 선생께서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셨던 곳이다.
비록 대부분의 청중들은 그 말을 거부했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아레오바고의 관리 곧 아레오바고 회의의 의원인 ‘디오누시오’가 있었다.
벅차 오르는 감동을 누를 길 없는 우리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양을 하며 당시의 상황을 머릿속에 상상했다.
마치 우리 순례팀 앞에 바울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잠시 현기증이 났다.
우리가 오직 전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첫날부터 사도 바울 선생님이 걸으셨던 그 길, 발자취, 외치는 복음, 세밀한 음성, 숨결을 느끼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성경에서 글로만 보던 도시와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했던 에그나티아.
우리는 비행기로 버스로 짧게는 2시간 길게는 6-7시간을 달린 그 길을 오로지 복음 하나 들고 걸으셨을 걸 생각하니 풀 한포기, 돌맹이 하나, 바람결에도 그 분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본격적인 순례의 첫 방문지 였던 고린도는 믿음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실라와 디모데의 합류로 복음사역이 일취월장한 곳이다.
우리는 이 곳에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특별히 안세광 담임 목사님과 신동화 사모님, 이득재 부목사님과 김남경 사모님을 위하여 뜨겁게 기도했다.
믿음의 동역자들은 참 중요하다.
우리 순례팀도 서로에게 힘이 되고 힘을 주는 믿음의 동역자들로 우뚝 서길 희망하며 아크로 코린트 산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도 하고 무너진 터를 돌며 땅 밟기와 마음의 기도로 소중하고 사랑하는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께 감사했다.



해질녁에 순례팀은 메테오라에 도착했다.
일정에는 다음날로 예정 되었지만 메테오라 전망대로 먼저 올라 갔다.
구불구불 마치 미시령을 올라가는 듯한 곡예 길을 한참 올라 우리는 천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풍경과 맞닥뜨렸다.
넘어가는 태양과 기암괴석, 아슬아슬한 수도원의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도 비 현실적인 환상의 세계였다.
순례팀은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 찬양을 드렸다.
그 날의 감동과 은혜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게 전할 길이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음날 방문한 바위 위의 우뚝 선 수도원에서 경외감을 느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줄기는 이 곳의 분위기를 더 고즈녁히 만들었다.
세상과 동 떨어져 이 곳에서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묵상하며 수도했을 그 분들의 믿음과 인내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 베뢰아 사람들은 너그러운 마음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며 사도 바울로 하여금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게 했다.
베뢰아를 경유하여 해가 어스름이 넘어가는 시간에 우리는 데살로니가전후서의 배경인 된 도시에 도착했다.
기둥 하나 돌맹이 하나 없이 다 벗겨진 페인트의 현판만 남았지만 순례팀은 왠지 숙연해졌다.
순례는 계속되어 우리는 밤에 그리스 소도시 네압볼리(까발라)에 도착했다.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건너가 당도한 첫 번째 성읍이다.
꽤나 붐볐던 시내 한 가운데 사도 바울이 첫 발을 밟았던 바위를 밟는 감동으로 순례를 마감했다.



오늘은 그리스 국경을 넘어 튀르키예로 간다.
국경을 넘기 전 빌립보로 향했다.
우리는 안개 자욱한 아침을 달려 빌립보 원형극장에 들어섰다. 그 웅장함이란...
우리 순례팀만 있던 안개가 자욱한 마법의 성 같은 원형극장에 섰을 때 중세 시대 외치던 사도 바울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이 비현실 같은 현실을 마주한 순례팀에게서는 짧은 탄식이 나왔다.
바울과 실라는 2차 전도 여행 때 이 곳에서 옥에 갇히고 매를 맞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였다.
우리는 원형극장에서 감격스럽게 찬양했다.
바울이 갇힌 옥문 앞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초가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옥문 너머의 차꼬를 차고 있는 바울과 실라의 모습을 그려 보며 지금 성지 순례를 하는 우리는 얼마나 편안한 신앙생활인가?
“관광은 보이는 것만 보지만 순례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본다”는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상기하며 가슴 한켠이 묵직해졌다.
순례팀은 입살라로 이동하여 그리스 국경을 통과했다.
그리스 버스로 국경을 통과한 후 튀르키예 버스로 갈아 탔다.
분단 국가이며 반도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국경 통과이다.
나라와 나라를 넘나드는 것이 어찌 이리 간단할 수 있는지... 강한 바람이 우리를 반겨줬다.
폐 깊숙이 심호흡을 하며 튀르키예 향기를 느꼈다.
튀르키예에서는 본격적인 일곱교회 순례가 예정되어 있다.

<계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사도 요한의 에베소 교회를 위한 책망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 순례팀은 각자의 사랑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버린 처음 사랑은 무엇일까?
우리는 에베소 교회를 보며 열방의 선교사님들을 기억했다.
죽으면 죽으리라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를 전하는 선교사님들의 그 숭고한 영혼 구원은 사랑 없이는 사명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님과의 처음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지, 있을까, 나의 신앙을 점검해 본다.



에베소의 현재 명칭은 셀축이다.
참 아름다운 도시였다. 아야슬룩 언덕위로 셀축 성벽이 우리를 반겼다.
10.29가 튀르키예 독립 100주년 되는 날로 초대 대통령의 현수막이 곳곳에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2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대극장, 아고라, 에베소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셀수스 도서관, 마리아 기념교회 등 발 밑의 대리석 한조각, 뼈대만 남은 기둥, 돌무더기들이 쌓여 있었지만 구석 구석 에베소의 화려한 면면을 느꼈다.
어쩜 부족함 없던 이들의 화려함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까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3:1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데 교회를 향하여 이런 책망을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책망은 무엇일까 잠깐 생각해 봤다.
나의 행위를 다 아시는 주님께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살았다 하나 죽은 자라는 말씀이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나를 짓눌렀으나 그럼에도 사데 교회의 희망은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명이 있다고 하시며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연고라고 하신 말씀에 회개도 하고 위안도 받았다.

<계3:7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형제애, 형제의 사랑이란 뜻의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께 칭찬받은 교회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의 우상 숭배와 예수님을 부정하며 기독교를 탄압하던 시대에 얼마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피흘림이 있었던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조차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믿음의 담대함과 가르침이 새삼 새롭지 않다.
며칠간 여정을 함께 한 은혜의 감동 때문인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의 미침을 간절히 사모하였다.

<계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 살았다 하나 죽은 사데 교회, 차지도 덥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는 항상 나의 신앙생활에서 역린이다.
늘 말로만 사랑하고 뜨뜨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나의 믿음이 황폐한 교회 터 만큼 가슴 속에 황량한 바람을 일으킨다.
성지순례로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속 따뜻한 온기가 도는 걸 느꼈다.
이 사랑과 감격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일까.
카바도키아에 있는 데린구유 지하도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하 20층의 거대한 이 도시는 현재 8층까지 발굴되어 순례할 수 있었다.
몸을 반으로 접어 그 좁은 통로를 내려가며 그들의 생활과 뜨거웠던 믿음의 열정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박해를 피해 이 곳에 몸을 숨겼지만 고난을 당할수록 더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주님을 섬겼던 아이러니.
이 곳에서는 낮아 질 수 밖에 없었다.
이 믿음의 선진들의 삶이 내게 큰 울림이 되어 나 자신을 돌아돌아보게 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영광교회 21명의 순례팀은 9박 10일동안 서로 감동과 감격의 은혜를 나누었다.
매일 매일의 묵상을 통하여 말씀을 상고하고 목사님의 돌발 퀴즈(물론 상품 있음), 찬양과 나눔으로 긴 시간의 버스 안에서도 도무지 지루할 새가 없었다.
방문지 교회 터에서 들었던 안세광 담임목사님의 말씀과 뜨거운 기도는 한동안 우리 삶 가운데 큰 힘이 될 것이다.
힘든 일정 가운데서도 우리들을 항상 챙겨 주고 알아야 할 사항들을 시시때때로 공지해 주신 이득재 목사님께도 감사하다.
또한 일정과 숙박, 식사, 중간중간 간식까지 꼼꼼히 챙겨주신 예루살렘 투어스 이철규 집사님(대표님)의 섬김과 헌신에 감사드린다.
나의 순례는 계속되어야 한다.
사도바울의 발자취를 따랐던 순례지에서의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지금 서 있는 이 곳에서의 삶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며 헌신해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 28장은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험난한 과정을 너무나 생생히 그리고 있다.

<행28: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사도 바울의 다음 전도 여정은 어디였을까?
사도행전 29장은 각자가 쓴다고 하는데 나의 사도행전은 어떤 내용을 쓸 수 있을까 묵상해 본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다음 순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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