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땅을 사모해 성지순례 전문 가이드가 된 성결인이 있다. 예루살렘투어스 대표 이철규 집사(영광교회)다. 이 집사는 아시아나 유럽 대신 항상 전쟁 도발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이스라엘로 향한다. 그가 이스라엘 성지순례 전문 가이드가 된 것은 성경이 준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땅에 발을 딛은 것이 벌써 23년 전입니다. 예루살렘성이 정말 존재하는지, 갈릴리 호수는 정말 바다처럼 큰 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제 눈으로 성지를 처음 봤을 때의 감격 덕분에 지금까지 성지순례 가이드를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철규 집사는 이스라엘을 ‘신앙의 텃밭’이라고 말한다. 모태신앙으로 성장했지만 성지를 직접 보기 전과 후의 그의 신앙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 개인적인 신앙 고백이 있기에 이 집사는 성지순례 전문여행사를 운영하면서 무엇보다 이 성지순례가 ‘순례객 신앙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음을 항상 되새긴다. 사명감 또한 이 집사가 20년 넘도록 성지순례 여행사를 꾸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이스라엘은 정치적인 환경이 안정적이지 못하기에 상황에 따라 여행이 금지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런 환경자체가 사업면으로는 불안요소가 되지만 그는 묵묵히 인내하며 이스라엘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순례’하러 찾아오는 한국교회 순례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일념 때문이다. 이 집사가 사업적인 이익보다 ‘사명감’을 우선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이 어려울 때마다 ‘성지순례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성실한 자세로 복음의 현장을 순례하기 위해 먼 길 오시는 분들을 섬기려고 노력합니다.” 이 집사가 운영하는 예루살렘투어스에는 이 집사의 이런 섬김 정신을 담은 특별 프로그램, ‘우리끼리 성지순례’라는 맞춤 프로그램이 있다. 일률적으로 계획되고 진행되는 대규모 투어 상품을 통해서는 만족하기 어려운 부분을 보완한 것으로,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2명부터 단독으로 출발할 수 있는 파격적인 상품이다. 또 방문 코스, 체험 등을 순례객들의 요구에 따라 세세하게 맞춰주기 때문에 인기가 좋아 점점 더 많은 순례객들이 선택하고 있는 추세다. 원하는 날짜 또한 선택할 수 있기에 직장을 다니면서 어렵게 시간을 빼어 성지순례를 오는 사람들도 이용 가능해 만족도가 높다. 예루살렘투어스는 또 순례객들의 연령도 감안해 프로그램을 짠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나 청년 단체가 순례를 오면 현지에서 영성 수련회를 할 수 있도록 진행한다. 젊은 순례객들은 유적지만 돌아보는 단조로운 코스보다 함께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순서가 있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투어스는 이렇게 다양한 한국 순례객들의 요청을 더 귀담아 듣고, 중간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쓰이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2년 전에는 서울에 직영점을 냈다. 이후 직접적으로 교회나 지방회 등 단체와 바로 연결이 되어 더욱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의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회사의 모토가 ‘성지로 가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더 많은 분들이 저희 예루살렘투어스와 함께 성경의 땅에서 신앙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다면 그보다 더 감사하고 보람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면서도 힘주어 말하는 이철규 집사의 소망 안에서 23년차 베테랑 성지순례 가이드의 진심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Date : 2017/08/08 | Author : 이철규 | Views : 1234
벧세메스(태양의 집) 성경의 낮은땅이라 불리우는 쉐펠라에는 총 5개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위쪽부터 아얄론 골짜기, 소렉골짜기, 엘라골짜기, 스바댜골짜기, 라기스골짜기 그 중에 소렉골짜기에 위치한 벧세메스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 30키로 거리에 위치하고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경계에 위치한 단지파의 소유의 땅입니다. 태양의 집이라는 의미의 벧세메스에 도착하면 북쪽으로 소렉골짜기와 함께 삼손의 고향인 소라 지역을 멀리 볼수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경계였던 이 지역에서 삼상 14-16장의 삼손과 드릴라의 성경 사건은 우리들에게 많은 현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주변에 약 1미터 가까이 자란 바짝 마른 들풀을 보면서 300마리 여우꼬리를 묶어 불을 질렀던 사건도 현장이기에 이해가 됩니다. 또한 중요한 성경의 사건이 벧세메스에서 일어났습니다. 실로에 머물던 법궤가 엘리 제사장 시대에 에벤에셀 전투에서 블레셋에 뻿기고  블레셋의 도시인 아스돗과 에그론에 머물다가 그곳에서 많은 재앙이 일어나자 결국 멍에를 맨 경험이 없는 암소 두마리에 법궤를 실어서 이곳 벧세메스로 보내게 됩니다. 멍에를 맨 경험 없는 두 암소는 두고온 새끼를 그리워 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것이 본능인데  놀랍게도 두 암소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법궤를 벧세메스로 옮기도 또한 사람들에 의해 번제로 드리게 됩니다.(삼상6:9-18) 나중에 법궤는 20년간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고 결국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낮은 언덕으로 되어 있는 벧세메스는 텔(언덕)벧세메스라 불리우고 주변에는 철기시대의 주거 흔적과 또한 비잔틴 시대때에 수도원 자리가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식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표지판이 없어서 경험자가 아니면 자리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벧세메스에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암소와 같이 우리에 멍에를 온전하게 지고 가는 신앙인이 되길 위해 기도드립니다.
Date : 2017/04/29 | Author : 이철규 | Views : 1300
집사님, ‘찌포리’가 성경에 나오는 곳 맞나요? 성지순례를 오셨던 연세가 있으신 권사님 한 분이 환하게 웃으시며 고민 끝에 물어보신다면서 사탕 두 알을 주셨던 일이 기억이 난다. 권사님, 찌포리는 성경에 나오는 장소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곳이에요. 집사님, 성경에 나오지도 않는데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알 수 있어요? 권사님, 찌포리는 예수님이 어린 시절을 보낸 나사렛에서 북서쪽 약 6km 떨어져서 예수님의 교육적 문화적 배경을 살펴 볼 수가 있어요. 그리고 예수님과 찌포리에 관한 재미난 연결고리가 하나 있는데 들어 보실래요?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머금어진다. 로마로부터 분봉왕의 지위를 받은 헤롯왕은 주전 38년 겨울 갈릴리 지역의 찌포리를 점령하여 로마에 도시를 바치는 충성심을 보였다. 그때부터 찌포리는 갈릴리 지역의 수도로서 크게 번성하였고 헤롯왕이 죽은 후에도 또한 찌포리는 그의 셋째 아들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갈릴리의 수도로서 계속 유지되며 번성하였다. 여기서 연결고리를 찾아볼 수 있다. 갈릴리의 수도로서 번성하였다면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진행하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주변의 많은 기술자가 유입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학자들은 생각했다. 아마도 그 당시에 예수님과 아버지 요셉도 목수로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찌포리에 와서 일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말만 하고 행함이 없는 바리새파를 보고 위선자(휘포크리테스 hypocrites)라고 말씀하신 것과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를 휘포크리테스 즉, 위선자라고 한 것과의 관계에서 조심스럽게 단서 엿볼 수 있다. 고대의 나사렛은 매우 촌동네여서 만약 예수님이 나사렛에서만 계셨다면 위선자와 같은 단어는 접하기 힘드셨을 것이니 아마도 예수님이 찌포리와 같은 큰 도시에 자주 방문하셨다고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4장에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발하여 예수님을 배척한 나사렛 사람들을 찌포리 도시와 함께 본다면 성경 배경을 이해하는데 또한 많은 도움이 된다. 그 외에도 성경에 ‘직가’라고 쓰여진 중심도로인 카르도에 가보면 오래된 중심도로에 아직도 선명하게 마차가 지나갔던 흔적이 바닥에 보이게 되고 화려하게 장식되었던 바닥 모자이크도 볼 수 있다. 근처에 갈색 지붕이 덮여 있는 곳이 유명한 ‘나일 하우스’이다. 약 5세기경에 건축된 고급 빌라로 추정하고 빌라 바닥에 장식되어 있는 화려한 나일강을 상징하는 모자이크가 펼쳐있다. 매년 나일강의 범람을 기원하는 축제를 여러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고 남자는 나일강을 여자는 이집트를 상징하고 있다. 언덕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고급 빌라유적이 있는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내부에 들어가면 주후 2~3세기에 지어졌던 빌라의 모습에서 특히 선명하게 보이는 여인의 모자이크를 발견하게 된다. 일명 “갈릴리의 모나리자”라고 명칭 되는 매우 작은 모자이크 조각을 사용하여 완성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근처에는 원형극장도 볼 수 있다. 약 4,500석 규모의 로마 원형극장이 있다. 북쪽방향에 회당(시나고그)가 위치해 있다. 헤롯왕의 사후에 찌포리에 있던 유대인들은 처음에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서 실패한 이후에는 주후 66년과 주후 132년에 있었던 1차, 2차 로마에 대항한 반란에는 가담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이 지역만큼은 박해가 적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머물지 못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 중에 많은 비중이 찌포리에 머물렀다. 특히 주후 200년경에 유명한 유대교 랍비인 유다 하나시가 찌포리에 머물렀다. 유대교의 미쉬나 탈무드 시대에 많은 유대 종교적 중심지 중에 한 도시였다. 회당에 도착하면 역시 바닥에 화려한 모자이크를 발견하게 된다. 우선 처음 보이는 모자이크는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을 것이라 알려주는 장면이고 중간에는 둥글게 Zodiac(12궁도)의 조각이 있고 하나님께서 우주의 주관자라는 것을 나타낸 모자이크가 있다. 맨 위쪽에는 법궤를 상징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당시에 무너진 성전을 다시 재건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실 것을 기원하는 모자이크를 볼 수 있다. 찌포리는 마치 새가 둥지를 튼 모습과 비슷하고 실제로 히브리어로 찌포리는 새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도시의 이름이 생겨나는 데는 우리나라나 이스라엘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평안을 기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이철규 집사
Date : 2017/02/08 | Author : 이철규 | Views : 952
베데스다 연못은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해 주신 역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소이다. 아람어로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아마도 성경에 나와있듯이 하늘의 천사가 병자들을 낫게 한다는 전설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이 베데스다 연못은 기드론 계곡에서 흘러 내려온 빗물이 모여 예루살렘 성전에 물을 공급하였기에 의학적인 치료 목적 외에도 종교적인 목적이 함께 공존했었던 것 같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 이러라)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한5:1-8) 눈을 감고 예수님이 계셨던 2천 년 전의 베데스다를 생각해보면 그곳에는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을 것이고 현재의 스데반 문으로 알려진 양문을 통해서 성전 제사용 동물들을 깨끗이 하기 위해 이곳을 사용했던 것처럼 병자들도 온전하지 못한 사람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기에 아마도 더욱더 이곳에 모여 병이 낫기를 간절히 원했었을 것이다. 베데스다 연못에는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 있는 행각이 5개 있었다고 하며 평균 길이 110m, 넓이 70m, 깊이 20m의 규모의 연못으로 남쪽과 북쪽 2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 2개의 연못에 대해 성경에서는 제1차 성전시대에 윗 저수지(이사야7:3, 왕하18:17)로 언급되었고 그 이후 BC 200년경 대제사장 시몬이 재위하던 시절 두 번째 연못이 만들어졌다고 나와있다. 제2차 유대 반란 이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곳에 치료의 신인 에스쿨라피오(Esculapio)신전을 만들었다. 주 후 5세기 비잔틴 시대에는 대규모의 교회가 세워졌었고, 주 후 614년 페르시아의 침공 때에 교회가 파괴되어 다시 십자군 시대 AD 1130년경 다시 교회와 수도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외경에 예수님의 외할머니 성 안나와 외할아버지 요아킴을 기념하는 교회를 베데스다 연못 근처에 세웠는데 이곳이 지금의 성 안나 교회이다. 이 성 안나 교회에는 여러 가지 일화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물러난 후 이슬람의 살라딘 장군이 성 안나 교회를 파괴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대신 이슬람 신학교로 사용하였다는 것과 아직도 성 안나교회 정문 위에 무슬림이 소유했다는 근거인 아랍어 석판이 걸려있다는 것이다. AD 1850년에 일어난 크림전쟁 이후에 이 베데스다 연못은 프랑스의 소유가 되고 프랑스 정부는 “백인 신부 수도회”에 이 연못을 위탁해서 지금도 프랑스 소유로 되어있다. 그래서 베데스다 연못으로 들어가는 입구 우측 정원에 “백인 신부 수도회”의 창립자인 “라비제리에” 추기경 흉상이 있다. 성안나교회에서 찬양을 하게 되면 공명이 잘되는 구조라서 어느 누구의 노래도 아름답게 들린다. 예루살렘 이 땅에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불러보길 권합니다. 평안을 기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이철규 집사
Date : 2017/01/06 | Author : 이철규 | Views : 2262
이스라엘 관광청이 추천하는 <가보고 싶은 장소 10선>에 포함되는 아름다운 곳, 이전에는 스킨 스쿠버들만이 갈 수 있었던 비밀스러운 장소, 하지만 지금은 케이블카가 있어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 ‘로쉬하니크라’. 케이블카를 타고 스킨 스쿠버만 갈 수 있는 곳을 간다? 케이블카라면 보통 ‘남산 케이블카’, ‘설악산 케이블카’ 등 산을 쉽게 오르게 하는 교통수단인데 어떻게 어디를 간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지중해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이러한 상식을 깨는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아찔한 케이블카가 있다. 거기에 또 그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 흡사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세노테가 생각날 정도로 아주 아름다운 하얀 크림색의 석회 바위와 에메랄드 바다가 어우러져 있는, 깎아지는 절벽을 타고 내려가야지만 만날 수 있는 그런 환상적인 동굴이 있다. 지중해 바다와 절벽이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로쉬하니크라는 예루살렘에서 약 200km 떨어져 있다. 오랜 기간 바다의 파도가 약 200m의 동굴을 만들었고, 또한 아주 특별한 파도와 바람이 코끼리 머리 모양의 절벽 또한 만들었다. 이곳 로쉬하니크라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약 70m 정도 내려가면 하이라이트 전경을 볼 수 있으니 짧은 거리지만 꼭 사진을 찍으시기를 당부드리고, 로쉬하니크라를 소개하는 약 15분 정도의 무료 영상, 약 200m 정도의 동굴을 걷는 코스 그리고 1918년 이후 영국이 약 40년간 이스라엘을 위임통치하던 시절 이곳을 통과했던 오리엔탈 특급열차가 지나갔었던 터널도 꼭 챙기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로쉬하니크라에서 북쪽으로 40km 위에 성경에 언급된 두로 지방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이 있어 바로 갈 수 없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평안을 기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이철규 집사
Date : 2016/12/18 | Author : 이철규 | Views : 1249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을 인하여 즐거워하나이다” (시편89:12)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르시되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그가 과연 산들 중의 다볼 같이 해변의 갈멜 같이 오리라” (예레미야46:18) 샬롬! 안녕하세요. 오늘은 위의 성경 말씀에 공통으로 나오는 다볼산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가이드를 하는 저로서는 무척 안타까운 곳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적으로 매우 중요한 산임에도 불구하고, 늘 일정과 시간에 쫓겨 버스를 타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스쳐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다볼산의 다볼은 히브리어로 ‘타보르’ 높다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높은 산이기에 산 이름을 높은 산이라 작명을 했을까 궁금했었지만, 약간은 실망스러운 높이 해발 588m입니다. 다볼산은 역시 높이보다는 벧샨, 갈릴리, 고라신 등 주변 모든 곳에서 다 볼 수 있어서 다볼산이라 부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옆길로 잠시 샜나 봅니다. 다시 제대로 말씀드리자면 다볼산은 나사렛 남동쪽 약 10킬로 거리에 있고 이스르엘 평원 중심에 있으며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세 지파(스불론, 납달리, 잇사갈)의 경계였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마태17:1) 오래전에 저는 다볼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보로 다볼산 정상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하나는 위의 성경 구절의 높은 산이 헤르몬산 아니면 다볼산이기에 이참에 예수님께서 가셨던 길을 걸어서 올라가고 싶은 경건한 마음이었고 두 번째는 멀리서 보면 마치 유선형의 모양으로 곡선이 완만하여서 한 30분이면 쉽게 올라갈 거 같은 가벼운 마음이였습니다. 역시 예수님께서는 저의 그 가벼운 마음을 겸손하게 만들어 주셨고 어쨌든 저는 예상보다 두 배인 약 1시간 정도를 땀을 뻘뻘 흘리며 다볼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우뚝 자리 잡은 오래되어 보이는 문이 “이제 다 왔다, 고생했다”라며 고생한(?) 저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바람의 문 제2차 십자군원정대는 1187년 갈릴리 왼편 하틴의 뿔에서 치러진 하틴전투에서 살라딘의 이슬람군대에게 패하게 된다. 다볼산을 수호하던 베네딕도 수도사들은 결국 물러나게 되고 이후 1213년 다마스쿠스 술탄의 아들 말릭 엘-무아잠이 산 정상을 요새화하며 만든 문이 바람의 문이다. 주님변화교회 바람의 문을 통과하여 약 200여 미터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들어가면 중앙에 세 개의 삼각형 지붕 모양의 기념교회를 볼 수 있다. 로마 카톨릭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의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신 사건(마태복음 17장)을 기념하는 교회이다. 현재의 교회는 1924년에 완공되었고 이태리의 유명한 교회 건축가인 바를루찌(Barluzzi)가 설계하였다. 정원 우측에 바를루찌의 조각도 선명하게 벽에 전시되어 있다. 교회 정문 좌측에는 모세를 기념한 작은 경당이, 우측에는 엘리야를 기념한 경당이 있다. “그 때에 모세와 엘이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마태복음17:3) 교회 내부로 들어가면 정면에 예수님의 변화되시는 성경의 말씀을 모자이크한 성화가 제단 위쪽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교회 지붕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데 구원의 방주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우측으로 나가면 주변 전망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모래산이 있고 동쪽을 바라보면 길르앗 산지 등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사사기 4장 - 드보라와 바락장군이 시스라를 제압 이 다볼산은 지형적으로 독립된 산봉우리가 있다. 구약 말씀에 사사기 4장에는 이스라엘에 사사 예훗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범죄하기에 주변 나라를 세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십니다. 하솔왕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중심으로 철병거 900대가 20년간 이스라엘 민족들을 괴롭힐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여자 예언자인 드보라와 바락장군에게 이곳 다볼산 정상에 이스라엘 군대 1만 명을 대기시키시고 이스라엘 군대를 치기 위해 진군하던 시스라의 철병거 900대를 향하여 엄청난 비를 내리셔서 그 무시무시한 철병거가 가장 극적인 순간에 진흙땅에 멈춰지고 시스라는 도망가게 됩니다. 다볼산은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이 항상 유리할 거 같지만 결국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약함을 가장 강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에 알려주는 의미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다볼산을 내려올 때는 중력의 법칙에 의해 훨씬 수월하게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걸어 왕복해야 된다고 걱정하신다면 단체 순례객들을 위한 왕복 셔틀(비용 약6불)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스라엘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한번쯤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평안을 기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이철규 집사
Date : 2016/11/25 | Author : 이철규 | Views : 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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